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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 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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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하다고 했다
지루하다고 했다
양조위 카리스마가 작렬이라고 또 누군가는 그랬다

위의 사진은 이 영화의 새로운 분기점이 된 장면이다.

장관이 일본인 거주지구에 막부인(왕치아즈..탕웨이)을 부른 것..

그 자체가 분기점이다.

탕웨이는 왜 자기를 이곳으로 불렀는지 안다고 했다.
당신의 창녀가 되기를 원하는 것이라고..바로 여기에서

일본장교들이 즐비한 주점에서 장관은 일본장교의 시선을 피하고 싶어 얼굴을 가린다.
그것을 보며 탕웨이는 천천히 미닫이 문을 닫는다.

그것은 모든 것을 이해하는 마음이었다.

양조위…그 장관은 허울뿐인 일제의 앞잡이…개였다
멋있고 카리스마 넘치고 위세가 있어 보이는 그였지만..밖에 나가면 하기 싫은 것들을 해주며
그 자리를 지키고 더 힘있어 보이는 그런 자리로 옮겨가는 그런 사람이었다

일제의 개 노릇을 하면서 말이다

남자든 여자든 자신의 직장에서, 직업에서 조금이라도 크고 싶은 사람이라면 느낄 것이다.
실력이란 것으로 얻을 수 없는게 더 많다는 것을, 그리고 그 제도권에서 내 자리를 만드려면
조직앞에서 무릎 꿇고 손등을 핧아 주는 개 노릇을 해야 한다는 것도 말이다.

그도 우리 같은 그런 개였다.

일제시대라서 더 나쁘게 보이고 하는 일이 고문과 심문이라서 그렇지
현대의 바로 바깥에서 일하는 사람, 즉 우리들의 모습인 것이다.

왜 일본 술집으로 불렀을까?

한없이 작아져 버린 불알을 가진 사나이가 자신의 여자를 데려와 위안받고 싶었던 것이다
쩔쩔 맬 수 밖에 없는 그 자리에서…자신이 유린 할 수 있는 여자이기에

탕웨이가 한 말이 맞다..자신의 창녀를 원했던 것이다.

그녀는 그 잠깐의 모습을 보고 그 조직과 그의 처지를, 그 불쌍한 모습을 보았다

그래서 그녀는 기꺼이 그의 창녀가 되어주었다.

몸이 아닌 마음을 열어서 말이다.

비명 같은 일본 노래들 사이에서 중국노래의 그 가녀리고 유혹하는 듯한 음색은 보는 관객마저 따뜻함을 느끼게
할만큼 너무 좋았었다.

그는 그 모습에서 사랑을 느꼈다.

그리고선

그가 할 수 있는 사랑의 표식인 비싼 다이아몬드 반지를 선물하게 된다.

그게 자신의 정부가 된 여자에게 그냥 줄 수도 있는 그런 하찮은 선물이라 생각하기엔
그 시절의 남자로서의 위상과 애정표현의 답답함을 생각해 보면 많지 않은 선택중의
최상이라고 여길 수 있는 것이었을 게다.

남자는 반지를 줌으로서 모든 마음을 주었고

여자는 그 마음을 받고 모든걸 내던졌다.

왕치아즈(탕웨이)는 사랑을 받지 못하고 거짓과 위선, 조직을 위한 희생으로 둘러 쌓여 살아왔다.

옳은 일을 하는 것과는 별개로 그녀도 “개” 로 취급받았던 존재다.
위업을 위해서는 원치 않는 상대와 섹스를 해야만 하기도 했으니 말이다.
모든게 거짓이고 희생을 강요하는 그런 억압적인 생활에서

자신이 죽여야 할 상대는

그 상대가 자신의 몸을 원하고 진정으로 안아주었다.

왜 탕웨이가 배신자라고 욕을 먹어야 하는가?

가장 잘 대해주었고 따스하게 안아주었던건 동지들도 국가도 가족도 아닌 “그” 였는데 말이다.

그만이 자신의 생에서 유일한 진심을 가진 남자였기에

그 진심을 …

그리고 그 남자를 구한게 나쁘다 말 할 수 없다.

다른 동지들이라 말하는 사람들도, 다 자기 욕심을 위해 자기를 이용했을 뿐이다.
자기의 목적이 아니라 말하면서도 자신을 위하는 그런 사람들과

그 남자를 지키고자 했던 그녀의 마음…이 둘을 경중을 따질 수 있는 것일까?

6 캐럿의 반지 ?

비싼…그리고 큰 반지로 밖에 안보인다 말하는 건 어리석음이다.

그는 자신의 심장을 선물했고

그녀는 그 반지에서 그의 심장을 봤다.

그가 그녀를 죽이고 싶었을까?

자신은 굉장히 높은 자리에 있는 것 같지만 그 자신 또한 감시 받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처형문서에 서명을 한 그의 모습은 또 다시 조직의 개가 된 모습이었다.

너무 심정이 비참해서 그 문서를 부하직원에게 감히 건네 주지도 못하는 그런 모습 말이다.

허울 뿐인 위상,,,,난 거기서 나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부학직원에게서 건네 받은 반지는

정중히 놓이지도 못하고 책상위에서 값어치 없이 흔들거렸다.

“내것이 아냐” 라고 말하는 불쌍한 상사와 그것을 조롱하는 듯 아무 말 안하는 그 부하

그것은 내동댕이 쳐진 그의 심장이었고 보는 나의 마음도 흔들렸었던 것 같다.

사랑할 만하지 않았지만

서로 사랑하게 된

자신의 본능에 충실했었고 감정에 진실했던 두 사람

둘 다 조직에서 버림받고 이용당하고 개 노릇을 하던 두 사람

왜 이들의 사랑이 아름답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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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Posse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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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레이 줄랍스키 감독의 1981년 작 Possession

연기파 배우 샘닐과 이자벨 아자니의 만남

가격적으로 봐도 결코 싸지 않은 배우들이지만, 배우들의 성격적으로도 만만치 않은 사람들임을 알 수 있다.

고혹적인 이자벨아자니의 모습은 보는 이를 매혹시키지만 이 영화는 이자벨아자니의 아름다움 마저

어둠의 저편으로 밀어버리는 잔혹함이 숨어있다.

한 사람을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이 소유욕이라 누군가는 그렇게 말할 것이다.

하지만 순수한 소유욕은 차라리 절망에 가까운 광기에 속함을 말하고 있다.

누군가의 것이 됨이 아닌 누군가를 가짐을 의미하는 그 순수함이 이 영화에 녹아있다.

영화는 어느 평론가의 말처럼 의미불명이고 알 수 없는 대사와 행동으로 뒤범벅 되어있다.

언뜻 보면 그런 듯 보인다.

어떤 모자란 사람이 보면 공포영화라고도 말할 것이다.

여기엔 사람이 사람을 갈망하는 욕구가 표현할 수 있는 광기를 넘어서 말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난데없는 괴물이 등장하는데 이것은 괴물이 아닌 자신이 갖고자 하는 순수한 욕망덩어리 임을 알 수 있다.

이자벨 아자니는 어느 순간 자신에게서 떨어져 나온 이 괴물을 먹여서 키우고..사랑을 나눈다.

그렇게 해서 얻어지는 것이 자신의 완전한 소유물이 될것을 알고 있었기에 자신이 갖고자 하는

모든 것을 그 괴물에게 건다. 그리고 그 괴물은 주변의 사람들의 영혼을 뺏어가며 자라고

결국 그 욕망덩어리의 괴물은 점점 형체를 얻어가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자신의 남편이다.

아니 남편의 모습을 한 욕망의 결정체라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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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자니..그녀는 너무 아름답다

감히 손대기 어려워 보이는 깊은 푸른색 눈동자 , 그리고 그 고귀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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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만든 자신의 남편 모습을 한 결정체와 같이 죽어가는 남편을 보러 왔다.

사실은 그녀는 완전한 남편을 원했고 결국 그와 같이 죽음을 함께 한다.

이 줄랍스키 감독은 사실….사이코 같다.

샤만카를 만든 감독이며…이 역시 사이코 영화다.

이 포제션이란 영화는 장면 하나하나가 꿈에서나 볼 수 있는 내용들이다.

언뜻 내용이 있는 듯 하면서 생각나는대로 써버린 각본을 짜집기 해놓은 듯도 하고

아무튼…..이 감독 문제아다.

논리적으로 분석하려 해도 안되는 영화

마치 카프카의 “변신”을 보는 듯 하다.

하지만 소유란 제목을 달고 나온 이 영화를 보며 현실을 넘어선 그 어떤 형태로서

인간의 본성을 광기란 것에 대입해 그려낸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무엇을 말하려 하는 가가 아니다.

이 한편에 당신의 욕망을 표현하는 조각들을 발견하며, 섬짓해짐을 느낀다면

아마 그것이 감독이 말하려 하는 진정한 의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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