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망토 와 늑대
어느 숲에 늑대가 한마리 들어왔습니다. 이 숲에는 먹이가 풍부하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 특이한 늑대는 동료들이 사는 무리를 떠나 몇일씩이고 혼자 와서 지내다 갔습니다. 늑대에게 있어서는 이 숲은 마음의 평화를 얻는 곳이었습니다. 먹이 하나를 가지고 아귀다툼을 하지 않아도 되고 몇시간씩 사냥감을 기다리며 조바심 치지 않아도 되는 곳이었기 때문이지요. 마치 늑대는 한마리 사슴처럼 고개를 치켜들고 숲의 여기저기를 산책하는 듯 했습니다. 많지 않은 작은 동물들은 처음에는 늑대를 경계했지만 시간이 지나자 자신을 사냥대상으로 여기는게 아니란 걸 알고 특별히 피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되자 늑대에게는 이 숲이 더욱 편한 곳이 되었습니다.
그 숲에는 작은 오두막이 하나 있었는데 할머니 혼자 살고 있었습니다. 사람에게 늑대란 존재가 달갑지 않은 것이란 걸 과거 자신의 동료들이 인간들 손에 죽어나가는 것을 통해 알고 있었기 때문에 오두막 근처에는 늑대는 얼씬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인간을 특별히 먹잇감이라고 생각해 본적도 없었죠. 다른 숲에 가서 조금만 노력하면 토끼나 들쥐 정도는 손쉽게 사냥해서 배를 채울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늑대에게는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었습니다. 일주일에 한 두번 할머니의 손녀인 빨간후드 원피스를 입은 아이가 오곤 했었는데, 왜 늑대인 자신이 그런 인간의 아이한테 끌리게 됐는 지 알수가 없었습니다. 고소한 빵냄새와 치즈와 크렌베리 잼의 냄새들 틈에 섞여 들어오는 그 아이의 목덜미인지 팔인지 머리에서 나는 것인지 알 수 없는 달콤하고 사랑스런 냄새가 났었던 것입니다. 처음엔 자신이 배가 고픈 거라고 생각하며, 동료들이 있는 숲에가서 사냥을 한 적도 있었지만 그 냄새는 뭔지 모를 신비로운 것이었습니다.
늑대는 빨간망토가 오는 날을 기다렸습니다. 냄새를 더 잘 맡기 위해 오솔길의 가까운 덤불숲에서 아이가 지나가길 기다린 적도 있었죠. 그 아이는 맑은 눈을 가졌었고, 호기심이 많아 오솔길 가장자리에 난 작은 꽃이나 버섯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한참을 들여다 보고 만져보곤 했었습니다. 한번은 빨간망토가 너무 늑대 가까이에서 꽃을 보는 바람에 그 아이의 얼굴과 향기를 생생하게 보고 느끼게 되자 늑대의 가슴은 터질 뻔 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 아이를 보면 이유없이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그러나 늑대는 감히 아이 앞에 나타나지는 않았습니다. 보자마자 기절이라도 하면 어쩌나 싶어서였죠. 늑대는 빨간망토를 보는 것이 그냥 자신의 가장 큰 기쁨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 좋은 시간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동료들이 있는 숲에 갔더니 빨간망토에 대해 동료들이 하는 말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저 산너머 참나무 숲에 다 쓰러져 가는 오두막에 인간 할머니가 살고 있다는 군”
“인간들은 건드리면 안돼. 더구나 할머니는 뼈하고 가죽밖에 없을거야. 먹을 것도 없다구”
“그 할머니를 이야기 하는게 아냐. 그 할머니의 손녀가 있다는데 가끔 할머니에게 빵을 가져다 주러 온데. 아직 어린아이니깐 살이 연하고 맛있을거야”
예전 인간들의 전쟁 때 인간의 고기 맛을 본 적이 있는 우두머리 늑대가 말을 했습니다. 그 말에 동료들은 호기심을 보였고 서로 맛을 보고 싶다고 한마디씩 했습니다. 이들은 토끼고기로는 성이 차지 않은 모양입니다.
늑대는 불안했습니다. 저들은 지금 당장이라도 빨간망토가 있는 숲에 갈지도 모를 일이었습니다. 동료들에게는 빨간망토를 본 적이 있다는 말도 꺼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저들이 그 숲에 들어가면 자신의 냄새를 맡을 것이란 것도, 빨간망토가 늑대무리에게 잡아 먹힐 것이란 것도 알 수 있었죠. 늑대는 무리들에서 슬금 빠져나와 참나무 숲으로 갔습니다.
늑대는 밤을 꼬박 새고 그 다음 날 점심 때가 될때까지 빨간망토가 오길 기다렸습니다. 오솔길에 빨간망토가 보이자 늑대는 멀찌감치서 말을 걸었습니다.
“겁먹지 마! 난 늑대야. 하지만 널 해칠 생각은 없어”
“늑대가 뭔데? 무서운거야?” 빨간망토는 아직 늑대를 본 적이 없었나 봅니다. 늑대를 개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습니다.
“넌 이제 할머니에게 다녀가는 걸 하지 말아야 해. 안그러면 다른 늑대 무리들이 널 잡아먹으러 올지도 몰라”
“응 ! 그런데 넌 왜 날 먹지 않는거야?” 빨간망토는 이해가 안된다는 표정으로 쳐다봤다.
“난 사람아이를 먹지 않아도 살 수 있어. 토끼나 들쥐 같은 걸 먹거든”
“그런데 왜 다른 늑대들은 날 먹으러 온다는 거야?”
“사람고기를 먹어 본 적이 있는 늑대가 있거든. 그는 그 맛을 잊지 못해서 널 꼭 잡으러 올거야”
“응…그런데 넌 내가 맛있을 거란 생각은 안해봤어?”
“해본 적 없어”
“먹어보면 맛있을 지도 모르잖아”
“널 먹어버리면 널 다시 만날 수가 없잖아”
빨간망토는 이해가 안된다는 표정이었습니다. 사람의 아이는 자신이 먹이가 된다는게 뭔지 모르고 있는게 확실했습니다.
그리고 늑대도 자신이 왜 빨간망토를 계속 보고 싶어하는 건지 설명할 수는 없었습니다. 자신도 이유를 몰랐기 때문입니다.
멀리서 다른 늑대들이 오는 발자국 소리를 늑대는 들었습니다. 더 이상 지체할 수가 없었습니다. 늑대는 빨간망토를 데리고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이 숲에서 벗어나 다른 숲으로 가면 못찾을 것입니다.
반나절을 달려 산을 넘고 작은 강을 건넜습니다. 빨간망토는 왜 자신이 늑대에게 끌려 달아나는 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할머니에게 가는 것도 너무 지겹고 해서 그냥 늑대를 따라 갔습니다. 늑대는 넓은 평원이 나오고 더 이상 추격하는 발자국 소리가 없는 것을 확인한 후 빨간망토와 천천히 걸었습니다.
“나와 계속 있으니 좋아?” 빨간망토가 물었습니다.
“너무 좋아” 늑대는 앞으로 어찌할지 잘 알수는 없었지만 무작정 좋았습니다.
늑대는 자신이 무리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알았고 빨간망토도 다시 그 숲으로 돌려보내기는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인간의 아이를 좋아하는 것은 확실하지만 같이 살아가는 방법이 뭘까는 미처 생각지 못했었습니다. 늑대는 늑대답지 않은 고민을 하느라 약간 머리가 아픈 것 같았습니다.
“나와 언제까지 있을건데?” 빨간망토가 다시 물었습니다.
“생각해 보지 않았어. 그런데 오래동안 있어야 할 것 같은데”
“그럼 난 이제 너하고 사는거야?”
“응!”
“왜 넌 늑대인거야?”
“늑대니까 늑대지…원래 이렇게 태어난 걸”
“아냐 늑대도 사람이 될 수 있어! 무지개가 뜨는 곳에 있는 샘물을 먹으면 짐승들이 사람이 될 수 있데”
“정말?”
“응! 우리 할머니가 말해줬어. 너두 나랑 살려면 사람이 되면 좋잖아”
“그럼 그리 가자!” 늑대는 빨간망토를 태우고 무지개가 걸리는 지평선 저쪽으로 걸어갔습니다.
하루 밤을 자고 또 걷고 또 하룻밤을 잤습니다. 무지개가 있는 곳까지는 별로 많이 남은 것 같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빨간망토는 배가 고프다며 할머니에게 줄 것이었던 빵과 잼을 꺼내 먹었습니다. 늑대도 빨간망토가 나눠 준 것을 먹었지만 별로 먹은 것 같지도 않았습니다. 사실 늑대는 오랫동안 고기를 먹지 못해서 힘이 없어져 가고 있었습니다. 너무 배가 고파서 토끼가 없나 하고 찾아봤지만 무지개까지 가는 길에는 아무것도 보이질 않았습니다. 빨간망토가 오물거리며 빵을 먹는 동안 늑대는 빨간망토의 냄새를 느꼈습니다. 결코 먹을 거라고 생각했던 적이 없었는데 살냄새가 너무 달콤하게 나는 것 같았습니다. 늑대는 꾹 참고 눈을 감아버렸습니다. 빨간망토는 피곤해서 그런가보다 하고 늑대를 배게삼아 낮잠을 잤습니다. 빨간망토의 연약한 살이 닿았습니다.
늑대의 송곳니가 삐죽 길어졌습니다. 늑대는 빨간망토를 한입에 물고 전속력으로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어디로 가는 것인지 몰랐습니다. 송곳니가 더 길어지고 침이 질질 흘렀습니다. 늑대의 목에서는 계속 으르렁 대는 소리가 났습니다. 눈은 핏발이 차서 너무 빨개져서 핏물이 흐를 것 같았습니다.
늑대는 높은 언덕에 오르자 아직 잠이 덜깬 빨간망토의 옷을 찢어 버리고 그 연한 살을 뜯어먹고 흐르는 피를 핧았습니다. 뼈가 걸리는 것 조차 상관없이 으드득 씹어서 먹어버렸습니다. 채 10분이 되지 않아 빨간망토는 몇개의 뼈와 머리카락만이 피묻은 옷과 함께 남았습니다.
늑대는 감격에 차서 큰 소리로 울부짖었습니다. 세상이 모두 늑대의 것 같았습니다. 다른 늑대 무리들이 쫗아올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인지도 모두 잊은 채 그 언덕에는 거칠고 광기에 찬 것 같은 늑대 한마리가 울고 있었습니다. 그 소리는 멀리 있는 할머니의 오두막까지도 들렸고 떠나온 늑대무리들에게도 들렸습니다.
“그 녀석 빨간망토를 혼자 먹어버렸나보군…흥” 대장 늑대는 코웃음을 쳤습니다.
늑대는 빨간망토의 피묻은 옷을 물고 힘이 넘치게 무지개가 있는 곳으로 달렸습니다. 반나절 동안 바람같이 달려서 무지개가 있는 샘물에 닿았는데 하늘에는 보름달이 떠 있었습니다. 아무생각도 하지 않고 뛰어온 늑대는 가쁜 숨을 쉬었습니다. 그리고 피가 묻어 있는 빨간망토를 샘물옆에 내려놨습니다.
달 빛이 눈부시게 빛나는 샘물을 들여다 보니 자신의 모습이 비쳤습니다. 입가에 피가 범벅이 되어있고 무서운 눈을 한 늑대가 거기 있었습니다. 늑대는 망설였습니다.
자신이 이제 같이 살 빨간망토가 없어졌는데 샘물을 마시고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망토 안에서 그 아이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습니다. 빨리 마시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목도 말랐기에 늑대는 벌컥벌컥 샘물을 들이켰습니다. 입가에 묻은 피자욱이 씻어졌습니다. 그리고 늑대는 죽음과도 같은 깊은 잠에 빠졌습니다. 늑대는 꿈에서 달과 별이 운행하는 하늘을 보며 샘물가에서 빨간망토와 같이 있었습니다.
새벽쯤에야 늑대는 잠에서 깼습니다.
하늘에 별이 수만개가 반짝이고 있었고 달이 지고 있었습니다. 샘물을 보았더니 달이 비추지 않은 샘물은 어둡고 깊어 보였습니다.
그러나 피비린내 나는 빨간망토만 있을 뿐 그 아이는 없었습니다. 그제서야 자신이 무슨 짓을 한 것인지 알았습니다.
처절하게 울부짖으며 풀밭을 굴렀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었습니다.
늑대는 자신의 발을 내려다 봤습니다.
발톱이 뾰족하고 털이 많이 난 짐승의 발, 늑대의 발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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